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스베이거스 레이더스 (문단 편집) === 존 그루덴의 저주 === 2002년에 그루덴 대신 공격 코디네이터 빌 캘러핸을 감독으로 승진시켜 [[뉴욕 제츠]]와 [[테네시 타이탄스]]를 연파하고 1984년 이후 18년만에 [[슈퍼볼 XXXVII|제37회 슈퍼볼(Super Bowl XXXVII)]]에 올라서는 데 까지는 성공했다.[* 그리고, 2002년의 타이탄스를 격파한 챔피언십 시리즈가 '''2022년 현재까지 레이더스의 마지막 플레이오프 승리이다.'''] 그런데 슈퍼볼의 상대는 다름아닌 알 데이비스가 트레이드 해버린 존 그루덴이 감독이 지휘한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였는데, 전형적인 창과 방패의 대결로 흥미를 모았으나 4년동안 자기가 만든 팀을 상대한 존 그루덴은 오클랜드 레이더스의 공격진을 손바닥 보듯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쿼터백 리치 개넌이 외칠 사인과 주로 사용할 전략까지 모두 간파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버커니어스의 세이프티였던 존 린치(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단장)가 다른 팀원들에게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희한하다. 우리가 훈련 때 대비해 두었던 모든 전략들이 진형 하나하나, 움직임 하나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나오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마이크에 잡혀서 방송되었을 정도였다. 역대 슈퍼볼에서 패배한 팀의 가장 굴욕스러운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한 일이라 하겠다.], 당해 시즌 MVP인 레이더스 쿼터백 리치 개넌이 5개의 인터셉트를 범할 정도로 강력한 수비로 압박해 48:21 대승을 거두며 37회 슈퍼볼이자 개인 첫 슈퍼볼 우승의 영예를 자기가 만들어놓고 간 팀 상대로 거둔다. 이후 존 그루덴은 버캐니어스에서 6년간 감독 자리에 있다가 2008년 사임하고, 2012년부터 2017년까지 [[ESPN]]의 먼데이 나잇 풋볼의 해설자를 맡았다. 2000~2001년 두 차례 아쉽게 슈퍼볼 진출에 실패하고 2002년에는 자기가 트레이드로 내친 그 감독에게 1년만에 부메랑을 제대로 얻어맞은 레이더스는 결국 지름신의 대가인 샐러리캡 오버라는 폭탄을 맞고 주축 선수들을 줄줄이 방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을 영입할때 쓴 매물이었던 신인 드래프트 픽은 그대로 다른팀으로 가서 신인 보강이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신인 보강때 알 데이비스의 간섭때문에 제대로 된 신인 지명에 실패한 여파가 누적되면서 레이더스는 나락에 빠져버린다. 특히 2007년 드래프트에서 1번픽으로 [[LSU]]의 [[쿼터백]] [[자마커스 러셀]](JaMarcus Russell)을 지명했지만 그야말로 거하게 폭망했다.[* [[FBS]]에서 죽음의 [[SEC]]라는 별명대로 강팀들의 격전지인 [[SEC]]에서 3시즌 간 활약했고, 6피트 6인치(198cm), 260파운드(118kg)의 거구에 강한 어깨를 보유하고 있어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007 드래프트를 앞두고 당시 2순위 지명권을 보유한 [[디트로이트 라이온즈]]와의 사전인터뷰에서 시계만 쳐다보는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 까였고, 1순위 지명 후 입단계약 체결이 늦어지며 트레이닝 캠프에도 불참하는 등 조짐이 좋지 않았다. 2007년과 2008년에는 그럭저럭 뛰었으나 2009년 시즌에는 쿼터백 중 가장 낮은 평점, 가장 낮은 패스성공률, 가장 적은 패싱 터치다운 개수, 가장 적은 패싱야드 등 최악의 성적을 찍었다. 보다못한 극성팬들은 러셀 유니폼 화형식을 가지며 그를 조롱하기도 했다. 2010시즌을 앞두고는 20파운드(9킬로그램)이나 쪄서 자기 관리와 워크 에씩 측면에서도 낙제 수준이었고 참다 못한 팀은 그를 2010년 5월에 방출했다. 방출 후 2013시즌 개막전까지 러셀의 배번 2번을 입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후 NFL 다른 팀들의 문을 계속 두드렸으나 계약에 실패했다. 이 정도면 전체 1번픽 출신 버스트 중에서는 단연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게다가 2번 픽으로 디트로이트에 뽑힌 선수가 바로 명예의 전당에 첫 턴에 헌액된 [[캘빈 존슨]]이다.] 2003 시즌 뒤 캘러핸 감독은 지도력에서 무능함을 드러내[* 2002시즌에는 정규시즌 11승 5패, 슈퍼볼 준우승의 성과를 냈으나 2003시즌에는 정규시즌 4승 12패,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폭망했다.] [[네브래스카 대학교]]로 옮겨가고[* 2004~2007 4시즌 간 정규시즌 27승 22패를 기록한 뒤 해임됐다. [[옵션 루트]] 등 러싱 공격이 전통인 콘허스커스에 패싱 위주의 웨스트 코스트 오펜스를 도입하려다 실패했다. 또한 패배 관련 여러 기록을 남겼다.] 후임 감독이건 코치진이건 간에 역시 하나같이 70먹은 노인네 알 데이비스의 전횡에 휘둘리며 짤리거나 단물만 빤뒤 도망가거나 하는 식으로 팀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 상태로 2011년에 알 데이비스 구단주가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아들 마크가 구단을 물려받았으나 늙은 선수들과 낡은 경기장, 샐러리캡 스페이스 등 아버지가 남긴 안 좋은 유산들을 가지고 팀을 꾸려야 했다. 2012년 오프시즌 때 마크 구단주는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으로 새 단장직에 전 그린베이 패커스 총무부장 레지 맥켄지를 영전했고, 40세의 베테랑 지도자 데니스 알렌을 감독으로 부른 뒤, 차차 낡은 계약들과 코치진을 정리해가며 팀을 갈았다. 그럼에도 주전 쿼터백 카슨 파머의 영입을 위해 질러댄 드래프트픽 퍼주기와 이런저런 누적된 악성계약과 먹튀들로 인해 한동안 쉽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